벌레와의 대화 - 잭 샤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그 다급한 작은 목소리가 몇번이고 계속해서 들려왔을 때, 헨리는 화들짝 놀랐다. 근처의 극장에서 재상영 중인 <더 플라이> 를 보고 막 아파트로 돌아온 참이어서, 그의 머리속에 떠오른 첫번째 생각은 클라이막스의 그 끔찍했던 거미줄 장면이었다.

"설마!"

헨리는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어쨌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디지?"

"구석에, 천장 가까이에요. 빨리요!"

안절부절하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목소리가 가리킨 장소에서는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 조명이라곤 15 와트용 전구가 끼워진 조그만 복도용 램프뿐인 방이니 놀랄 일도 아니긴 했다. 헨리는 곧은 등받이의 의자 위로 올라가서, 좀 더 자세히 벽과 천장이 만나는 모서리를 살펴보았다. 거미줄에 걸려 버둥대는 조그만 말벌이 보였다. 요동치는 날개가 거미줄에 너덜 너덜 구멍을 뚫어놓았고, 거미줄은 끈쩍끈쩍한 회색 해초처럼 말벌의 몸에 들러붙어 있었다. 거미줄 가장자리에서는 거미 한마리가 잽싸게 움직였고, 거미의 보석같은 눈에는 다양한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네가 말했니?"

헨리가 다소 놀라며 물었다.

"그래요. 이 징그러운 곤충이 나를 해치우기 전에 구해 주세요!"

조그만 목소리가 애원했다. 헨리는 거미줄을 향해 한 손을 들어올리다가 중간에 멈췄다.

"구해주면, 내게 뭘 해 줄래?"

"아이구! 구조부터 해 줘요. 그 다음에 보상 문제를 이야기하자구요."

"싫어. 네가 어둠속으로 홀연히 사라져버리면, 나만 바보같이 거미줄에 손가락을 버린 채 남겨질텐데."

"까다로운 분이로군요."

"아니, 난 널널한 사람이기도 해. 그게 내 문제야. 아무 것도 잘난 게 없어, 사교생활이나 얼굴, 근육 할 것 없이. 내 평생을 보디빌딩과 사교술에 대한 책을 읽는데 바쳤지만, 지금 내 꼴을 좀 보라구."

잠시 침묵이 있었다. 그런 다음 그 목소리가 용감하게 말했다.

"정말로 보잘것없어 뵈는군요."

"그래." 헨리가 유쾌하게 동의했다. "키는 160 센티미터에, 몸무게는 45 킬로그램, 여드름이 잔뜩 난데다, 눈도 나빠. 거기에다, 대머리까지 벗겨지고 있어. 네가 대단한 걸 해 줄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지만, 네가 뭘 해 주던 간에 지금의 나보다는 나아질게 분명해"

"사실, 난 당신을 도와줄 수 있어요. 지금 모습은 본래의 내 모습이 아니에요, 그래서 당신에게 말을 걸 수가 있는 거에요. 난 경쟁자인 지니가 건 마법에 걸려 있어요."

"지니라고?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그런 거? 소원을 들어주는 그거 말야?"

"네에에!" 조그만, 아주 조그만 목소리가 비명을 질렀다. "이제 서둘러요, 저 끔찍한 녀석이 날 해치우기 전에 박살내 줘요, 그러면 당신의 소원을 들어주겠어요!"

"그런 마술을 부릴 수 있다면, 왜 네가 직접 저 녀석을 날려버리지 않는거지?"

"지니는요," 벌레가 말했다. "절대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힘을 쓰면 안돼요. 오직 주인을 위해서만 힘을 쓸수 있어요."

"맹세나 그 비슷한 걸 하나 보지?"

"물론이죠. 자기 자신을 위해 마법을 쓰려 한다면, 지니가 될 수 없는 걸요. 온 세상을 돌봐야 하는 거에요."

"만약 맹세를 깨뜨린다면?"

"마력을 잃어버리고 그냥 떠도는 귀신이 되버려요. 여러가지 일을 볼 수는 있지만, 그 일에 대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버리는 거죠."

"상상이 간다." 헨리가 동정을 표했다. "하지만 어쩌서 한가지 소원이지? 난 일반적으로 세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거라고 알고 있는데."

말벌이 더 미친듯이 날개를 치며 거미줄에서 벗어나려 하자, 거미가 길을 살피며 재빨리 다른 구석으로 움직였다.

"사람들이 너무 욕심사납고 영악해졌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린 소원을 하나로 줄였어요."

"목숨을 구해주는 건 세가지 소원을 들어줄 정도의 일이 아닐까?"

헨리가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할 수는 없어요, 만약 한 가지 이상의 소원을 들어주려 한다면 맹세를 깨뜨리는 것이 되어서 내 마력을 잃어버리게 될 거에요."

"젠장할," 헨리가 한숨을 쉬었다. "난 무슨 소원을 말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어."

"구조가 먼저에요, 생각은 나중에 해욧!"

"싫어, 지니는 교활한 법이지. 내 소원을 먼저 들어주면 널 구해 주겠어."

"알았어요, 알았다구요! 빨리 생각해요!"

지니가 비명을 질렀다.

헨리는 머리가 빠개지도록 생각을 하면서, 생각을 마치기 전에 소원을 들어줄 지니가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워 그쪽 구석을 노려보았다. 순간적으로 뭔가를 결정하자니 끔찍하게 어려웠다.

"나,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 같아."

헨리가 천천히 말했다.

"어떻게 생겼건 간에, 그 사람이 부자라면 굉장한 인기를 얻을 수 있을테니까."

"돈이요? 그럼 거래가 된 거에요!"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고, 레몬색 번개가 번쩍거리더니 헨리의 방이 갑자기 펄럭거리는 녹색 지폐로 흘러 넘쳤다. 그 혼란 중에 에메랄드 빛도 번쩍거렸다. 또한, 우아한 남성용 반지가 부엌 테이블 위에 잔뜩 놓여 있었고, 그 반지의 보석은 루비에서, 홍옥수(紅玉髓), 용담(龍膽), 마노(瑪瑙)에 이르기까지 다양했고, 싱크대에는 옛날의 스페인 금화와 금이 가득했다.

"이제 날 구해줘요!"

지니가 소리쳤다.

"하지만,"

헨리가 비틀거렸다. 그 모든 보화를 눈앞에 대하자 눈이 뱅뱅 돌고, 자신의 거친 심장 고동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돈이 전부는 아니잖아, 그러니까..."

"뭐라구요?"

거의 절망적인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의 몸값을 치뤘는데도, 이 정도로는 안되겠다고 말하는 거에요?"

헨리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성긴 머리카락을 훑으며, 삐쩍마른 체격과 볼품없이 툭 튀어나온 아랫배를 내려다보았다.(아랫배는 겨우 멜론만한 크기지만 전체적인 윤곽선을 망쳐놓고 있었다.)

그리고 헨리는 근시인 눈을 몇번 깜빡이며 코웃음 쳤다.

"설사 돈이 있어도, 그리고 돈이 가져다주는 권력이 있어도, 그래서 없는 것보다는 나은 겉치레의 다정한 친구가 한무더기 있어도, 난 여전히 내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거야 - "

"알았어요, 자!"

지니가 훌쩍거리며 말했다.

뜨거운 바람과 레몬색 번개가 다시 한번 불려오고, 순식간에 헨리의 머리가 천장에 부딛쳤다. 소용돌이 바람의 와중에 모든 재물은 사라졌다. 그는, 1 미터 90 센티미터의 키에 75 센티미터의 어깨넓이, 강철판처럼 편편한 아랫배를 지닌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만져보니, 숱많은 곱슬머리가 만져졌다. 머리카락을 앞으로 끌어내려 자세히 살펴보았다. 핸섬한 검은색 머리카락에는 윤기가 흘렀다. 충치가 사라졌고, 이가 빠진 곳에는 튼튼하고 새하얀 이가 나 있었다. 여드름도 단단한 구리빛 피부 속으로 남김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내 모습이 어때?"

몸을 떨며 헨리가 중얼중얼 물었다.

"록 허드슨 같아요," 지니가 비명을 질렀다. "자 이제 빨리 나를 구해 줘요 -, 오, 이런, 또 뭐가 잘못되었어요?"

"난, 돈도 갖고 싶어. 어떻게 길이 없을까? 어, 그러니까, 복합적인 소원같은 거 안될까? 내 말뜻은, 핸섬한 백만장자처럼, 두가지 소원을 한꺼번에 들어 줄 수 없겠느냐는 거야?"

"불가능해요, 돈과 외모는 전혀 별개의 거에요, 그렇게는 안돼요. 어느 쪽을 원해요?"

지니가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헨리가 괴로와하며 두 손을 비볐다.

"나도 모르겠어!" 그리고는 진심으로 말했다. "잘 생겨봤자 가난하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

"방법은 있어요!" 지니가 열성적으로 말했다. "잘생긴 외모를 이용하는 거에요, 영화에 출연해서 한 재산을 벌어들이는 거죠!"

헨리가 한숨을 쉬었다. "영화계에는 이미 록 허드슨이 있는 걸."

"좋아요, 그럼 돈을 이용해서 잘 생긴 외모를 얻어요. 성형수술, 가발, 헬스클럽의 10 주 코스, 굽이 높은 구두 등등 - "

지니가 절망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록 허드슨같은 외모는 될 수 없을 거야, 똑 같을 리가 없어."

헨리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럼, 인기는 어때요? 인기가 좋다면, 진정으로 인기가 좋다면 어떨까요? 외모는 문제가 되지 않을 거에요,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좋아할 테니까요. 돈에 대해서는, 인기를 이용하면 언제든지 사람들에게서 돈을 빌릴 수 있을 거고, 돈이외의 것이라도..."

"글쎄," 그 아이디어를 요리조리 생각해보며 헨리가 말했다. "록 허드슨의 외모를 갖고 있을지라도 매일밤 데이트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겠지. 하지만 인기라면..."

"됐어요!"

지니가 말했다. 다시 그 바람과 번개가 나타났고, 헨리는 찔린 풍선처럼 몸을 떨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별로 달라진 걸 느낄 수 없었다.

"내가 인기가 있어?"

헨리가 희망에 가득차 물었다.

그 순간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고, 문이 안쪽으로 벌컥 열리더니 따뜻한 빨간 입술과 반짝이는 눈빛을 한 발랄한 소녀들 한또거리가 뛰어들어왔다. 소녀들이 모두 그의 이름을 불러댔다. 헨리가 그들에게로 달려가며 가장 가까이 있던 소녀를 잡으려는 순간 -

"돌아와요!"

지니의 갸날픈 목소리가 비명을 질렀다.

쾅! 와르륵! 삑!

헨리는 바닥에 쓰러졌고 그의 팔은 허공을 움켜쥐었다. 방에 있던 소녀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헨리는 부끄러하며 일어서서 구석에 놓인 의자로 다가가 다시 그 위로 올라갔다.

"미안해. 제 정신이 아니었어."

거미줄로 다가가며 헨리가 속삭였다.

"물론 미안한게 당연하죠.!" 지니가 냅다 말했다. "이런 소동은 이제 충분해요! 빨리 한가지 소원을 결정해요, 그렇지 않으면 모든게 허사가 될 테니까요!"

헨리는 거미줄을 가까이 들여다 보았다. 정말이지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말벌은 이제 거미줄에 충분히 뒤엉킨 채 거미의 어금니로부터 5 센티미터 이내에 매달려 있었다. 말벌이 붕붕 소리를 내며 미친듯이 날개짓을 했다.

"글쎄... 구함을 받은 후에도 네가 내 소원을 들어줄 거라고 믿어도 될까?"

"네, 네!"

한쌍의 징그러운 작은 생물이 거리를 좁혀감에 따라 지니가 외쳤다.

"뭐든지요! 서둘러요!"

"좋아."

헨리는 그렇게 말하며 의자에서 뛰어내렸다. 부엌 서랍에서 망치를 꺼내들고 서둘러 전투지로 돌아왔다.

"내가 실수하지 않도록 꼼짝말고 있어!"

"좋아요!"

지니가 훌쩍거리며 대답했다.

헨리가 젖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망치를 휘둘렀다...

거미가 벽지 위에 납작하게 으깨지며 지저분한 얼룩을 남겼다. 헨리가 진저리를 치며 망치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이제 넌 자유다."

헨리가 한숨을 쉬었다.

침묵.

"넌 자유야."

손톱 끝으로 말벌을 쿡쿡 찌르며 헨리가 말했다. 그러자 미칠듯한 통증이 손을 따라 흘러내렸고, 헨리는 바닥에 떨어져서 거의 기절할 뻔 했다. 찔린 곳이 퉁퉁 부어오른 걸 보고 헨리는 충격을 받았다.

헨리는 성마르게 의자로 기어올라갔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결국 난 너를 거미에게서 구해줬어, 그렇잖아?... 지니?"

여전히, 침묵.

가슴이 철렁해지는 한 가지 생각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헨리는 미친듯이 전화기로 달려가서 자연사 박물관에 전화를 걸었다.

"거미에게 천적이 있습니까?"

전화를 받은 남자에게 물었다.

"물론이죠, 새, 두꺼비, 그리고 당연히, 말벌도 그렇죠."

한 쌍의 벌레와 이야기를 할 때의 골치거리는 어느 쪽이 입술이 움직이고 있는 쪽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 이후 헨리는 새 아파트로 이사했다. 벽에 남은 그 얼룩을 볼 때마다 미칠 것 같았으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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